2015년 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재무제표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회사가 2012년부터 종속기업으로 연결해오던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기업으로 바꾸고, 보유지분을 공정가치로 다시 평가하면서 대규모 이익이 장부에 들어왔다. 같은 회사, 같은 공장, 같은 연구개발 조직이 하루 사이에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달라진 것은 지배력을 판단하는 회계 문장이었다.
이후 그 문장을 두고 회사와 감사인, 금융감독당국, 검찰, 법원이 서로 다른 설명을 내놓았다. 시장은 ‘분식인가 아닌가’라는 한 줄 답을 원했다. 그러나 실제 쟁점은 지배력, 잠재적 의결권, 콜옵션의 실질성, 회계처리 변경의 시기와 목적을 나눠야 보였다. 회계기준은 숫자로 끝나지만 그 숫자에 도달하는 길에는 계약과 판단이 있다.
85% 지분만으로 끝나지 않은 지배력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1년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했다. 초기 지분은 삼성바이오로직스 85%, 바이오젠 15%였다. 숫자만 보면 지배주주는 명확해 보인다. 그러나 합작계약에는 바이오젠이 일정 조건 아래 지분을 늘릴 수 있는 콜옵션과 주요 의사결정에 관한 권리가 있었다. 옵션을 행사하면 바이오젠의 지분은 50%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은 과반 지분만으로 지배력을 판단하지 않는다. 투자대상의 관련 활동을 지시할 현재의 능력이 있는지, 변동이익에 노출되는지, 그 능력으로 이익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함께 본다. 아직 행사되지 않은 잠재적 의결권도 실질적이면 고려한다. 옵션의 행사가격, 행사 가능 시점, 경제적 유인, 당사자의 자금능력은 모두 판단 자료가 된다.
회사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기업으로 보면 자산과 부채, 수익과 비용을 줄별로 연결한다. 관계기업으로 보면 지분법을 적용한다. 지배력을 잃는 시점에는 종전 지분을 공정가치로 평가하면서 평가차익이 생길 수 있다. 이 사건에서는 그 차익이 회사의 손익과 자기자본을 크게 바꿨다. 지배력 판단 한 줄이 상장 전 재무제표의 모습까지 달라지게 한 이유다.
증권선물위원회는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회계처리와 공시를 문제 삼아 제재를 의결했다. 1차 조치는 바이오젠 콜옵션 관련 공시 누락을, 2차 조치는 2015년 지배력 변경과 이전 회계처리를 중심으로 했다. 회사는 정당한 회계 판단이라고 반박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검찰은 별도의 기업결합·승계 관련 형사사건에서 회계처리의 위법성을 공소사실의 일부로 제시했다.
여기서부터 같은 자료가 다른 절차로 들어갔다. 감독기관은 회계기준 위반과 고의성, 제재 수준을 판단했다. 행정법원은 처분사유와 제재의 적법성을 심사했다. 형사법원은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는지를 판단했다. 세 절차의 질문은 겹치지만 같지 않다.
원칙중심 회계의 어려움
국제회계기준은 세세한 거래마다 정답표를 주기보다 원칙을 제시한다. 새로운 거래를 경제적 실질에 맞게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같은 사실을 두고 전문적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판단의 폭이 넓다는 말은 마음대로 처리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회사는 결론에 이르는 가정과 증거를 문서로 남기고, 매 보고기간 그 판단이 여전히 타당한지 검토해야 한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가 올라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가 경제적으로 유리해졌다는 사정은 중요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옵션이 실질적이었는가. 2012년 설립 당시부터 공동지배였는지, 2015년에 지배력을 상실했는지, 아니면 지배력 변화가 없었는지가 갈렸다. 옵션가치와 제품 개발 성과가 바뀌는 동안 계약상 권리는 같았다. 회계는 권리의 문구와 경제적 행사 가능성을 함께 봐야 했다.
공정가치도 자동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비상장 바이오기업의 가치는 임상 성공확률, 예상 매출, 특허기간, 할인율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입력값 중 일부만 바뀌어도 평가액이 움직인다. 그래서 평가 결과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사용한 가정과 민감도다. 큰 평가이익이 생겼다면 그 이익이 현금 유입인지, 지배력 변경에 따른 일회성 장부이익인지 구분해야 한다.
이 사건을 ‘회계는 원래 주관적’이라고 정리하면 잘못이다. 원칙중심 기준에도 경계가 있다. 특정 재무결과를 먼저 정한 뒤 근거를 맞추는 행위는 전문적 판단이 아니다. 반대로 판단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결과가 큰 모든 회계변경을 부정으로 부를 수도 없다. 회계부정의 판단에는 결론뿐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 당시 이용 가능한 정보, 일관된 기준 적용, 공시의 충분성이 필요하다.
재판의 결론을 한 줄로 합치지 않기
2026년 8월 1일을 기준으로 이 사건의 법적 상태는 절차별로 나눠 읽어야 한다. 공개자료에 따르면 1차 제재와 관련한 처분 취소소송은 회사 승소 취지의 하급심 판단이 대법원에서 확정된 것으로 확인된다. 2차 제재 취소소송에서는 법원이 증선위 처분의 전제와 제재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처분을 취소한 판단들이 이어졌지만, 각 처분과 심급의 확정 여부는 동일하지 않았다. 출판 직전 사건번호별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
삼성물산 합병과 회계처리를 함께 다룬 형사사건에서는 대법원이 2025년 피고인들의 무죄를 확정했다. 형사 무죄는 검사가 제시한 범죄 구성요건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행정법원이 일부 회계처리의 문제를 언급했거나 처분 전체를 취소한 이유와 같은 층위가 아니다. 어느 한 판결을 들어 다른 절차의 모든 판단이 사라졌다고 쓰면 판결의 범위를 넓히게 된다.
행정소송에서도 처분을 취소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핵심 사실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일부 처분사유만 인정됐는데 하나의 제재로 묶여 있어 전부 취소될 수 있다. 제재 수위가 재량권을 벗어났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회사 승소’라는 결과만으로 법원이 모든 회계처리를 적정하다고 확인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반대로 판결 이유 중 비판적인 문장만 떼어 ‘분식 확정’이라고 말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감독당국의 책임도 같은 기준으로 봐야 한다. 시장 신뢰를 위해 중대한 회계 의혹을 조사할 의무가 있다. 동시에 제재는 예측 가능해야 하고 처분사유는 일관돼야 한다. 감리 과정에서 논리가 바뀌거나 여러 연도의 회계처리를 하나의 의도 아래 묶으려면 그 연결을 증거로 설명해야 한다. 강한 제재일수록 절차와 이유는 더 단단해야 한다.
회계 숫자를 읽는 투자자의 순서
투자자가 이 사건에서 가져갈 도구는 ‘분식 여부를 스스로 판정하는 법’이 아니다. 공개된 숫자의 성격을 나누는 법이다. 첫째, 당기순이익 중 현금이 들어온 영업이익과 평가이익을 구분한다. 둘째, 연결범위가 바뀌었는지 본다. 셋째, 지배력 판단의 근거가 주석에 적혀 있는지 확인한다. 넷째, 공정가치 평가의 가정과 민감도를 찾는다. 다섯째, 감사인의 강조사항과 핵심감사사항을 읽는다.
예를 들어 평가이익 1조 원과 제품 판매로 생긴 영업현금 1조 원은 같은 이익으로 표시될 수 있지만 회수 가능성과 반복 가능성이 다르다. 전자는 가정이 바뀌면 다시 움직일 수 있다. 후자는 매출채권 회수 여부를 따져야 하지만 거래에서 발생한 현금흐름에 가깝다. 숫자의 크기보다 발생 원인을 먼저 읽어야 한다.
기업도 판단의 흔적을 더 투명하게 남겨야 한다. 이사회와 감사위원회는 결론을 승인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대안적 회계처리가 재무제표에 미치는 효과를 비교해야 한다. 외부평가기관의 숫자를 받았더라도 핵심 가정은 경영진의 책임이다. 감사인은 경영진의 의도를 추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시 문서와 후속 행동이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회계 판단은 사후에 보면 훨씬 쉬워 보인다. 바이오젠이 실제로 옵션을 행사했다는 뒤의 사실을 2012년 판단에 그대로 넣을 수는 없다. 당시 옵션 행사가격과 후보물질 가치, 자금조달 가능성으로 실질성을 평가해야 한다. 반대로 2015년 평가 당시 이미 확보된 임상성과와 협상자료를 빼고 설립 당시 계약문구만 볼 수도 없다. 각 보고기간 말에 존재했던 정보로 판단을 다시 세우는 것이 회계 검증의 출발점이다.
감사위원회 회의록도 그래서 중요하다. ‘외부전문가 검토 결과 적정’이라는 한 줄은 판단 근거가 아니다. 지배력 변화가 없다는 대안, 공동지배라는 대안, 관계기업 전환이라는 대안이 각각 어떤 권리와 사실을 전제로 하는지 남겨야 한다. 경영진의 성과보상, 상장 일정, 자본잠식 가능성처럼 특정 결론에 유인이 되는 요소도 독립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해상충이 존재한다고 회계결론이 곧 틀리는 것은 아니지만 검증 강도는 높아져야 한다.
투자자는 단정적인 제목을 먼저 만난다. 회계사는 기준서 문단과 계약서를 먼저 본다. 감독기관은 위반과 고의성을, 형사법원은 범죄의 증명을 본다. 같은 사건을 두고 문장이 달라지는 이유는 누군가 반드시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라 질문과 입증기준이 다르기 때문일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결론이 같은 무게를 갖는 것도 아니다. 각 문장이 어떤 자료와 절차 위에 서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기준의 예측 가능성은 기업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투자자도 비슷한 거래가 같은 원칙으로 처리될 것이라고 믿어야 재무제표를 비교할 수 있다. 감독기관이 새로운 사실 때문에 판단을 바꿀 수는 있다. 그때는 무엇이 새로 확인됐고 이전 판단의 어느 부분이 달라졌는지를 공개해야 한다. 해석의 변화가 설명되지 않으면 회계기준은 숫자를 비교하는 공용어가 되기 어렵다.
회계는 숫자로 쓰인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대목은 결국 판단의 문장이다. 그 문장을 믿으려면 결론보다 먼저 근거와 작성 시점을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