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말 객장과 PC방의 시세 화면에는 전에 보기 어려운 종목들이 상한가 목록을 채웠다. 인터넷 전화, 무료 통화, 가입자 수, 미국 진출이라는 말이 손익계산서보다 먼저 읽혔다. 새롬기술은 그 시기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회사였다. 전화망을 인터넷으로 바꾸는 기술은 실제였고, 인터넷이 산업과 생활을 바꿀 것이라는 전망도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기술의 가능성이 어느 가격에서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였다.
외환위기 뒤 한국 경제는 새로운 성장 이야기를 필요로 했다. 정부는 벤처기업을 지원했고 코스닥시장은 자금조달의 통로가 됐다. 초고속인터넷과 개인용 컴퓨터가 빠르게 보급됐다. 젊은 창업자와 새 기업이 언론의 중심에 섰다. 대기업의 부채와 구조조정에 지친 투자자에게 벤처기업은 과거의 짐 없이 성장할 수 있는 회사로 보였다. 정책, 기술, 유동성, 세대의 기대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새롬기술의 인터넷전화 서비스 ‘다이얼패드’는 국경 간 통신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상징성을 가졌다. 시장은 현재 매출보다 앞으로 모일 이용자와 그 이용자가 만들 수익을 먼저 계산했다. 적자가 이어지는 기업에는 주가수익비율(PER)을 적용하기 어렵다. 그러자 가입자 수, 접속량, 제휴, 해외법인 같은 지표가 기업가치를 설명했다. 이런 지표는 성장 초기 기업을 보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매출과 현금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없으면 가치평가의 근거가 아니라 기대의 크기만 재는 숫자가 된다.
거품은 거짓말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진짜 변화에 너무 큰 가격을 붙일 때도 생긴다. 인터넷은 실제로 세상을 바꿨다. 그 변화에서 살아남은 기업과 사라진 기업은 달랐다. 투자자는 산업의 방향을 맞히고도 종목과 가격에서 틀릴 수 있었다. ‘인터넷이 성장한다’와 ‘이 회사 주식을 지금 이 가격에 산다’ 사이에는 사업모델, 자금조달, 경쟁, 지배구조와 가격이라는 여러 문이 있다.
당시 투자자는 기업이 돈을 어떻게 버는지보다 사용자가 얼마나 빨리 늘어나는지를 보았다. 사용자를 모으기 위해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면 외형은 빠르게 커진다. 그 기간의 비용은 누군가 부담해야 한다. 창업자의 자본, 증자대금, 전환사채, 전략적 투자자의 돈이 차례로 들어간다. 이용자를 유료 고객으로 바꾸지 못하면 회사는 다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주가가 높을 때 증자는 쉽다. 주가가 내려가면 같은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지분을 내주어야 한다. 현금소진 속도는 기술기업의 시계를 보여준다.
가격이 오를수록 이야기는 더 설득력을 얻었다. 전날 산 사람이 이익을 보면 그 수익이 사업 전망의 증거처럼 받아들여졌다. 새로운 매수자는 재무제표보다 먼저 오른 차트를 보았다. 언론은 짧은 기간의 급등을 설명할 문장을 찾았고, 회사의 계획과 제휴 발표가 그 자리를 채웠다. 가격이 정보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새로운 정보의 수요를 만드는 순환이 생겼다. 이때 공시는 위험을 줄이는 문서가 아니라 기대를 연장하는 재료로 소비되기 쉽다.
거품이 꺼질 때 순서는 반대였다. 자금조달 환경이 나빠지고 성장 전망이 낮아지자 미래 이익에 적용하던 할인율이 올라갔다. 같은 사업계획도 더 낮은 현재가치로 계산됐다. 주가가 떨어지면 담보와 신용으로 투자한 계좌에서 매도가 나왔다. 매도는 가격을 더 낮췄다. 사업의 변화보다 주가의 변화가 훨씬 빨랐다. 최고가에서 산 사람에게 장기 성장의 가능성은 손실을 견딜 현금이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었다.
새롬기술과 벤처 거품을 법 위반 사건 하나로 묶어서는 안 된다. 확정된 사실은 공시, 주가와 거래량, 재무제표, 사업의 변천으로 확인한다. 기관 판단과 사법 판단이 있었던 개별 회계·공시·경영진 행위는 혐의와 심급별 결론을 나눠야 한다. 2000년 전후의 모든 가격 상승이 시세조종이었던 것은 아니다. 많은 거래는 합법적인 기대와 판단의 결과였다. 필자의 해석으로 중요한 것은 합법적인 거래만으로도 거품과 큰 손실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법은 허위와 부정한 거래를 처벌할 수 있지만 비싼 가격에 대한 판단까지 대신할 수 없다.
그렇다고 ‘투자자 책임’으로 이야기를 닫을 수도 없다. 기업은 전망과 확정 실적을 구분해 공시해야 한다. 증권사는 높은 변동성과 자금조달 위험을 설명해야 한다. 시장 운영자는 이상급등과 공시의 질을 살펴야 한다. 언론은 사업계획과 체결된 계약, 가입자와 유료 고객, 매출과 현금유입을 같은 말처럼 다루지 않아야 한다. 투자자의 판단은 이 정보환경 위에서 이루어진다.
벤처기업 직원에게 높은 주가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스톡옵션은 보상이었고 회사의 명함은 경력이었다. 주가 급락은 투자자의 계좌뿐 아니라 채용, 임금, 연구개발과 거래처의 계획을 바꿨다. 유망 산업에 자본이 몰리는 일은 성장에 필요하다. 그러나 가격이 너무 앞서가면 조정 과정에서 필요한 기업까지 자금을 잃는다. 거품은 실패한 투자자의 손실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다음 혁신기업이 시장에서 신뢰를 얻는 비용도 높인다.
성장주를 볼 때 PER가 없다는 이유로 평가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먼저 현금이 얼마나 남아 있고 현재 지출 속도라면 몇 분기를 버틸 수 있는지 본다. 이용자 한 명을 얻는 비용과 그 이용자가 남기는 매출총이익을 비교한다. 매출이 관계회사 거래나 일회성 계약에 의존하는지 확인한다. 다음 증자가 필요할 시점과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을 계산한다. 기술의 우수성과 주식의 가격은 이렇게 다른 질문으로 나뉜다.
새롬기술을 둘러싼 논쟁은 ‘실적주와 성장주 중 무엇이 옳은가’로 정리되지 않는다. 성장주도 결국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다. 다만 먼 미래의 숫자가 크고 불확실해 작은 가정 변화가 가치에 큰 차이를 만든다. 매출 성장률을 몇 퍼센트 바꾸거나 흑자전환 시점을 1년 늦추는 것만으로 계산값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평가모형의 정교함보다 가정의 공개가 먼저다.
당시에는 비교기업 배수가 자주 쓰였다. 미국 인터넷기업의 가입자당 가치나 매출배수를 국내 기업에 적용했다. 비교하려면 고객의 구매력, 경쟁환경, 통신비용, 자본시장 규모가 비슷해야 한다. 이름에 ‘인터넷’이 들어간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배수를 쓰면 가장 중요한 차이를 지운다. 비교기업을 고르는 사람의 기대가 계산 결과에 이미 들어간다.
주가 급등은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을 낮춘다. 높은 가격으로 적은 주식을 발행해도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그 돈으로 기술과 인력을 확보하면 처음의 기대가 사업의 현실을 만들 수도 있다. 반대로 조달자금이 본업과 무관한 투자나 인수에 쓰이면 가격 상승은 자원배분을 왜곡한다. 거품의 경제적 평가는 주가 하락만이 아니라 올라온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까지 보아야 한다.
내부자와 초기주주의 매도는 그 자체로 부정이 아니다. 창업자는 위험을 오래 부담했고 일부 지분을 현금화할 수 있다. 그러나 회사가 대규모 계획을 발표하는 시기와 내부자의 매도 시기가 가까우면 정보 차이를 확인해야 한다. 보호예수 해제, 스톡옵션 행사, 전환사채의 주식 전환 가능 물량은 미래 공급이다. 투자자는 시장 수요만큼 주식 수의 변화를 살펴야 한다.
코스닥시장의 급락 뒤에는 벤처기업 전체를 불신하는 반작용이 왔다. 좋은 기술을 가진 회사도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졌다. 과열기에 심사 없이 들어온 돈은 냉각기에 구분 없이 빠져나갔다. 시장의 실패는 너무 많이 투자한 데만 있지 않다. 가격이 무너진 뒤 필요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가려내지 못한 데에도 있다.
금융교육은 ‘유행을 따라가지 말라’는 훈계보다 두 개의 표를 가르쳐야 한다. 첫 표에는 이용자, 유료전환율, 고객획득비용과 고객당 이익을 넣는다. 둘째 표에는 보유현금, 분기 지출, 추가 조달과 지분희석을 넣는다. 사업의 성장과 주주의 수익이 어디에서 갈리는지 두 표가 보여준다.
지금도 시장은 인공지능, 바이오, 로봇, 우주와 같은 새 언어를 가격에 반영한다. 새로운 산업을 의심하자는 말이 아니다. 전망을 숫자로 바꾸는 과정을 더 꼼꼼히 보자는 것이다. 회사가 제시한 총시장 규모가 자신의 매출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용자 수가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니다. 미래를 믿은 일이 잘못은 아니었다. 미래의 값을 묻지 않은 거래가 오래 버티지 못했다.
벤처 거품을 세대의 탐욕으로 설명하면 정책의 몫도 빠진다. 세제혜택과 코스닥 활성화, 벤처인증과 자금지원은 필요한 정책이었지만 인증이 투자품질 보증처럼 읽힐 수 있었다. 정책당국은 산업 육성과 투자자보호를 같은 문서에서 구별해야 한다. 지원대상이라는 사실은 주식가치가 적정하다는 판단이 아니다.
기업도 높은 주가를 부담으로 인식해야 한다. 시장 기대가 사업의 실행속도보다 빨라지면 매 분기 더 큰 약속이 필요해진다. 무리한 인수와 사업확장은 기대를 유지하려는 선택에서 시작될 수 있다. 이사회는 주가 부양보다 조달한 자본의 사용처와 장기 수익성을 보아야 한다. 좋은 공시는 기대를 키우는 문장이 아니라 기대가 틀릴 조건까지 함께 적는 문서다.
개인에게는 매수 뒤의 규칙이 필요하다. 실적가정이 틀리면 어느 지점에서 다시 평가할지, 추가 자금조달이 예상보다 빨라지면 비중을 어떻게 줄일지 정한다. 가격 하락률만으로 손절선을 두는 것보다 투자근거가 사라지는 조건을 적는 편이 낫다. 미래기업의 투자에는 전망 못지않게 전망을 수정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상승장에서 현금을 남겨두는 일도 평가의 일부다. 가격이 내려간 뒤 좋은 기업을 구별해 살 여력이 없으면 산업 전망을 맞힌 보상이 다른 사람에게 간다. 투자기간은 회사가 성공하는 데 걸리는 시간뿐 아니라 투자자가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는 기간으로 정해야 한다.
다음 거래에서 확인할 세 가지
- 회사가 제시한 성장지표는 실제 현금유입과 언제, 어떤 비율로 연결되는가. - 현재 현금과 분기별 소진액을 고려하면 추가 증자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 산업 전망이 맞더라도 지금의 시가총액을 정당화하려면 매출과 이익이 몇 배가 되어야 하는가.
새롬기술 사업보고서와 당시 공시, 한국거래소 코스닥 지수·주가·거래대금 자료, 정부의 벤처정책 자료, 유상증자와 해외사업 관련 서류, 관련 수사·판결 기록. 최고가와 상승률은 액면분할·권리락을 반영한 수정주가 기준을 최종 교정에서 통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