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라임자산운용이 일부 사모펀드의 환매를 중단했다. 투자자는 약정된 환매일에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판매자료에는 안정적인 중수익, 다양한 자산, 전문 운용이라는 말이 있었다. 펀드 안에는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 사모채권, 비상장 주식, 해외 무역금융 자산이 들어 있었다. 오늘 팔아 현금으로 만들기 어려운 자산이 많았다.
환매 중단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구멍처럼 보였다. 실제로는 자산의 만기와 투자자의 환매 약속 사이에 오래전부터 간격이 있었다. 새 투자금과 다른 펀드의 돈이 들어오는 동안 그 간격은 보이지 않았다. 환매가 몰리고 증권사가 담보를 요구하자 펀드가 가진 시간과 투자자에게 약속한 시간이 충돌했다.
이 사건의 중심 질문은 누가 더 나쁜 사람이었는지가 아니다. 매일 또는 짧은 주기로 돈을 돌려주겠다는 펀드가 몇 달, 몇 년이 걸려야 회수할 수 있는 자산을 샀다면 출구를 누가 책임졌는가이다. 운용사, 판매사, 수탁회사, 사무관리회사, 총수익스왑 계약을 맺은 증권사는 같은 펀드를 보면서도 서로 다른 정보와 권한을 갖고 있었다.
열려 있는 펀드와 닫혀 있는 자산
개방형 펀드는 투자자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중도 환매를 청구할 수 있다. 환매 요청이 오면 운용사는 현금을 지급해야 한다. 보유자산이 상장주식과 국채라면 시장에서 팔아 마련할 수 있다. 매수자가 드문 사모채권이나 비상장 자산은 다르다. 장부에 평가가격이 있어도 그 가격으로 오늘 살 사람이 없을 수 있다.
유동성은 자산이 좋고 나쁜가와 별개의 성질이다. 만기에 전액 상환될 우량채권이라도 오늘 팔 수 없다면 당일 환매자금이 되지 못한다. 반대로 가격이 크게 움직이는 상장주식도 거래량이 충분하면 현금화는 빠르다. 라임 펀드의 문제를 부실자산이라는 말만으로 설명하면 환매 약속과 자산구성의 간격이 보이지 않는다.
모펀드와 자펀드 구조도 시야를 흐렸다. 여러 판매사가 서로 다른 이름의 자펀드를 팔았고 그 돈은 몇 개 모펀드로 모였다. 투자자는 자신이 가입한 상품명을 기억했지만 실제 위험은 같은 모펀드에서 공유됐다. 한 모펀드의 자산이 막히면 이름이 다른 자펀드의 환매도 함께 어려워졌다. 분산돼 보이는 판매목록 아래 위험은 집중돼 있었다.
총수익스왑(TRS)은 레버리지를 더했다. 증권사가 자산 매입대금을 먼저 대고 펀드가 그 자산의 수익과 손실을 부담하는 계약이다. 가격이 오르면 적은 자기자금으로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가격이 내려가거나 담보가 부족해지면 증권사는 계약에 따라 담보를 추가로 요구하거나 포지션을 청산한다. 일반 투자자보다 TRS 증권사가 먼저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구조라면 펀드 안의 남은 손실은 후순위 투자자에게 집중된다.
기준가격이 가린 것
펀드 기준가격은 매일 숫자로 표시된다. 상장자산은 시장가격을 쓰기 쉽지만 비상장·비유동 자산은 평가모형과 외부평가에 의존한다. 발행회사의 상환능력이 약해졌어도 평가에 늦게 반영되면 화면의 수익률은 안정적으로 보인다. 투자자가 환매를 요구하고 실제 매각가격이 확인되는 순간 장부와 현금의 차이가 드러난다.
라임 사태에서는 부실자산을 다른 펀드로 넘기거나 신규자금으로 기존 환매를 맞췄다는 의혹과 혐의가 조사·재판에서 다뤄졌다. 법원이 확정한 범죄사실, 검찰이 기소한 내용, 감독기관 검사결과의 범위는 인물과 펀드마다 다르다. 모든 자금 이동을 하나의 ‘돌려막기’로 부르면 정상적인 유동성 관리와 위법한 손실 전가를 구별하기 어렵다.
정상적인 펀드도 환매에 대비해 현금을 보유하고 일부 자산을 판다. 문제는 특정 펀드의 손실을 숨기기 위해 이해관계가 다른 펀드에 불리한 가격으로 자산을 이전했는지, 후발 투자자의 돈으로 선행 투자자의 환매를 지속했는지, 부실을 알고도 기준가격을 유지했는지에 있다. 거래 목적과 가격, 승인 절차, 투자자별 이익 충돌을 확인해야 한다.
해외 무역금융펀드와 관련해서는 기초자산의 실제 상태와 투자제안서의 설명이 달랐다는 점이 큰 쟁점이었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일부 플루토 TF-1호 관련 판매에 민법상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적용해 투자원금 전액 반환을 권고했다. 이는 라임의 모든 펀드와 모든 판매에 자동 적용된 결론이 아니다. 다른 펀드는 불완전판매 비율과 투자자별 사정에 따라 배상 판단이 달랐다.
각자 보았으나 아무도 전체를 보지 않은 구조
운용사는 투자대상과 매매를 결정했다. 판매사는 고객을 만나 상품을 권유하고 설명했다. 수탁회사는 펀드재산을 보관·관리했다. 사무관리회사는 기준가격 산정과 회계업무를 맡았다. 증권사는 TRS를 제공하며 담보와 포지션을 관리했다. 역할이 나뉜 것은 견제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나 권한과 정보가 잘못 나뉘면 각 기관은 자기 화면만 보고 전체 위험은 보지 못한다.
판매사가 운용사의 설명을 그대로 전달했다면 투자자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서 확인이 멈춘다. 수탁회사가 형식적 지시 여부만 보고 자산의 실재와 운용제한을 점검하지 못하면 보관 기능은 통장 관리에 그친다. 사무관리회사가 운용사가 준 가격을 기계적으로 입력하면 기준가격은 독립된 검증이 아니다. TRS 증권사가 자기 신용위험만 관리하고 펀드 전체 유동성은 보지 않으면 담보 회수가 환매 중단을 앞당길 수 있다.
사건 뒤 사모펀드 제도는 운용사 내부통제, 판매사의 상품 점검, 수탁회사와 사무관리회사의 감시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일반투자자에게 판매되는 사모펀드에는 더 많은 보호장치가 도입됐다. 규제가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통제가 작동한다고 볼 수는 없다. 상품명세와 실제 보유자산을 대조할 수 있는 데이터, 이상거래를 거절할 권한, 이해상충을 보고할 책임이 함께 있어야 한다.
감독도 펀드별 서류 검사만으로는 구조를 보기 어렵다. 같은 운용사의 여러 펀드 사이 자산 이전, 특정 발행회사에 대한 실질 노출, TRS까지 합친 레버리지, 판매사별 환매 추이를 연결해야 한다. 위험은 법적 상품 단위를 넘어 움직이기 때문이다. 감독자료가 부서와 기관별로 갈라져 있으면 모펀드·자펀드 구조와 닮은 사각지대가 생긴다.
유동성 스트레스테스트는 숫자를 채우는 서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전체 투자자의 10%나 30%가 동시에 환매할 때 어느 자산을 어떤 할인율로 팔지 적어야 한다. TRS 담보 요구가 같은 날 발생하는 경우도 넣어야 한다. 매각 순서를 정하면 먼저 환매하는 사람과 남는 사람 사이 손실 배분이 보인다. 결과는 이사회와 판매사에도 공유돼야 판매 속도와 자산 유동성을 함께 조정할 수 있다.
평가가격의 불확실성도 범위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비상장 채권을 100으로 적었더라도 급매 시 70에만 팔 수 있다면 두 숫자 사이가 환매 위험이다. 단일한 기준가격만 공시하면 투자자는 100을 현금화 가능한 값으로 읽는다. 평가모형 값, 최근 실제 거래가격, 스트레스 매각가격을 나누면 장부와 출구의 차이가 드러난다.
환매를 기다리는 시간
환매 중단액은 투자자에게 같은 의미가 아니다. 여유자금을 넣은 사람과 퇴직 뒤 생활비로 쓰려던 사람의 시간표가 다르다. 법인 운영자금이면 급여와 거래대금 지급에 영향을 준다. 손실률이 확정되기 전에도 돈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이 생활계획을 바꾼다. 유동성 손실은 수익률 표에 바로 나타나지 않는 비용이다.
판매직원도 같은 위치에 있지 않았다. 상품을 설계하고 위험을 알았던 사람, 본점의 판매목표에 따라 자료를 전달한 사람, 위험을 의심하고도 판매한 사람의 책임은 나눠야 한다. 고객과 장기간 거래한 직원은 회사가 만든 상품 신뢰와 개인 관계의 신뢰를 함께 사용했다. 그래서 판매사의 설명책임은 설명서 한 권을 건넸는지로 끝나지 않는다.
판매보수와 운용보수의 시계도 달랐다. 상품이 팔리면 판매실적은 곧 집계되고 보수 수입도 발생한다. 비유동 자산의 손실은 평가가 늦어지면 몇 달 뒤에 나타난다. 가입 시점에 보상을 얻는 사람과 환매 시점에 손실을 부담하는 사람이 다르면 판매량을 줄일 유인이 약하다. 성과평가에 환매중단, 민원, 사후 손실을 반영하고 보수 일부를 장기간 이연해야 하는 이유다.
운용보수도 순자산가치에 비례하면 자산 평가액이 높게 유지될수록 커질 수 있다. 부실 가능성을 빨리 반영하면 보수가 줄고 환매가 늘 수 있다. 이 이해상충을 외부평가와 수탁 감시가 견제해야 한다. 외부기관이 운용사와 장기 계약관계에 있거나 필요한 원자료를 운용사에게만 받는다면 독립성은 형식에 머문다.
펀드의 만기와 자산 만기를 맞추는 방법은 환매를 막는 것만이 아니다. 비유동 자산 비중에 상한을 두고 현금성 자산을 확보할 수 있다. 대규모 환매 때 비용을 먼저 나가는 투자자에게 반영하는 장치도 검토할 수 있다. 어떤 장치를 쓰든 가입 당시 규약에 명확히 적혀야 한다. 환매가 어려워진 뒤 규칙을 바꾸면 남은 투자자와 나가는 투자자의 이해가 다시 충돌한다.
라임자산운용 관련 운용·판매·로비 사건에는 여러 피고인과 재판이 있었다. 2026년 8월 1일 현재 상당수 주요 형사판결과 제재가 확정됐지만, 개별 민사소송과 회수절차까지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정치권 로비 의혹을 금융구조의 중심에 놓으면 투자자의 돈이 어디로 갔는지 흐려진다. 확정된 판결은 판결대로, 남은 의혹은 주장 주체와 절차를 표시해 적어야 한다.
투자자가 기억한 펀드 이름은 여러 개였다. 실제 자금은 몇 개의 모펀드와 비유동 자산으로 모였다. 이름을 나누면 위험이 나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막힌 출구는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