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의 주문은 한 화면에서 시작해도 여러 장부를 지난다. 해외 고객이 매도 스왑을 요청한다. 홍콩 법인이 주문 가능 수량을 계산한다. 국내 증권부문이 한국거래소에 주문을 낸다. 결제일까지 주식을 빌려 인도한다. 각 단계의 시간대와 시스템이 다르면 한 장부에서는 빌릴 수 있는 것으로 보인 수량이 다른 장부에서는 이미 사용됐을 수 있다.
금융감독원은 2023년 BNP파리바와 HSBC의 한국 주식 공매도 과정에서 차입이 확정되지 않은 주문이 제출·체결된 사실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증권선물위원회는 관련 법인들에 합계 265억 원대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이후 글로벌 IB 전수조사에서 추가 사례가 확인됐다. 2024년 중간발표 기준 9개사의 위반 혐의 주문 규모는 2,000억 원을 넘었다.
‘불법 공매도 적발’이라는 행정기관의 판단과 형사법원의 유죄는 같은 문장이 아니다. HSBC 홍콩법인 형사사건에서는 1심과 2심이 무죄를 선고했다. 공개된 판결 보도에 따르면 법원은 주문과 체결의 범죄 성립 시점, 임직원의 고의와 공모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는지를 엄격히 봤다. 2026년 8월 1일 현재 상고 여부와 대법원 절차의 최신 상태는 출판 직전 다시 확인해야 한다. 과징금 처분의 존재도 형사 무죄로 자동 소멸하지 않는다.
먼저 빌리고 파는 거래
공매도는 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팔고 나중에 사서 갚는 거래다. 한국 법은 원칙적으로 매도 전에 주식을 빌렸거나 빌릴 수 있는 법적·실질적 조치를 완료한 차입공매도만 허용한다. 차입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파는 무차입공매도는 금지한다. 가격 하락을 예상하는 거래 자체가 불법인 것은 아니다. 결제할 주식을 확보하지 않고 주문하는 것이 문제다.
정상적인 흐름은 다섯 단계다. 고객이 공매도 주문을 낸다. 주문 주체나 중개회사가 대차계약 또는 확정된 차입 약정을 확인한다. 빌린 수량만큼 주문 가능 잔고가 줄어든다. 거래가 체결된다. 결제일에 주식을 인도한다. 같은 수량을 여러 부서가 중복 사용하지 않도록 장부가 실시간으로 맞아야 한다.
글로벌 IB의 구조에서는 현물부서, 스왑부서, 대차부서, 지역법인이 나뉜다. 한 법인의 내부 시스템에 예상 차입수량을 입력하고 다른 법인이 실제 주문을 실행할 수 있다. 장부 갱신이 늦거나 수동으로 이뤄지면 보유·차입 수량보다 주문 가능 수량이 크게 표시된다. 결제 전에 부족분을 사후 차입해 결제불이행이 없었다고 해도 주문 당시의 차입 확인 의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매도 규제는 결제불이행만 막기 위한 것이 아니다. 확보하지 않은 물량이 시장에 매도압력으로 들어오는 일을 막는다. 사후에 빌려 결제를 맞췄다는 이유로 허용하면 자금력과 대차망이 큰 기관은 먼저 팔고 나중에 주식을 찾을 수 있다. 같은 시장의 다른 투자자는 먼저 빌려야 한다. 규칙의 순서가 경쟁조건을 바꾼다.
시스템 오류와 고의 사이
행정제재는 법령상 의무 위반이 확인되면 고의·과실의 정도를 반영해 과징금 등을 부과할 수 있다. 형사처벌은 구성요건과 고의를 더 엄격하게 입증해야 한다. 글로벌 IB 사건에서 중요한 쟁점은 복잡한 시스템과 관행이 어느 지점에서 범죄의 고의가 되는가였다.
회사가 차입 전 매도를 허용하는 시스템을 오래 운영했다면 내부통제 책임은 무겁다. 과거 경고와 오류 기록, 직원 교육, 법률검토, 사후 보정 관행은 인식 여부를 판단하는 자료가 된다. 그러나 법인의 시스템 결함이 곧바로 특정 임직원의 범죄 고의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누가 한국 규제를 알았고 어떤 주문을 승인했으며 부족수량을 인식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HSBC 사건의 하급심 무죄는 이런 입증 문제를 다뤘다. 법원이 무차입 상태의 시스템상 위험이 없었다고 확인한 것은 아니다. 형사 구성요건에 필요한 체결과 고의·공모의 증명이 부족하다고 본 범위가 중요하다. 검찰의 기소 내용은 당국의 행정판단과 또 다르다. 판결문 주문과 이유, 상고 상태를 분리해야 한다.
BNP파리바와 다른 글로벌 IB에 대한 제재·형사절차도 기관별로 단계가 다르다. 2026년 8월 1일 기준으로 모든 적발 건이 확정판결에 이른 것은 아니다. 따라서 ‘글로벌 IB가 범죄를 확정받았다’거나 ‘법원이 불법 공매도 자체를 부정했다’고 쓸 수 없다. 어느 법인의 어느 기간 주문에 대해 감독기관이 무엇을 판단했고 법원이 어떤 혐의를 심리했는지 적어야 한다.
주문금액, 체결금액, 이익은 다르다
공매도 사건의 숫자는 쉽게 섞인다. 주문금액은 거래소에 제출한 주문의 가격과 수량을 기준으로 한다. 전부 체결되지 않을 수 있다. 체결금액은 실제 매매계약이 성립한 부분이다. 결제수량은 다시 다를 수 있다. 부당이득은 매도대금이 아니라 이후 매수·정산 비용을 뺀 경제적 이익을 따져야 한다.
과징금 규모도 위반 주문금액과 같지 않다. 법이 정한 산식, 위반 정도, 고의·과실, 자진신고와 시정 여부가 반영된다. 여러 회사의 수치를 합산할 때 기간과 종목이 겹치는지 확인해야 한다. ‘수천억 원 불법 공매도’라는 제목이 수천억 원의 이익을 뜻하지 않는다.
이 구분은 위반을 작게 보이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가격충격과 제재의 비례성을 평가하려면 정확한 수치가 필요하다. 주문이 컸어도 체결이 적으면 직접 시장영향은 다르다. 이익이 없었어도 규칙을 어긴 대량 주문은 시장 신뢰를 해칠 수 있다. 위반금액, 체결, 손익을 각각 적어야 한다.
전산화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
사건 뒤 한국은 기관투자자의 공매도 주문 가능 잔고를 전산으로 관리하고, 거래소의 중앙점검 시스템과 연결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2025년 공매도 재개 과정에서도 잔고관리와 탐지체계가 핵심 조건으로 제시됐다. 수기 엑셀과 부서별 장부에 의존하던 관행을 줄이고 주문 전·후 검증을 강화했다.
전산시스템은 같은 수량의 중복 사용과 음수 잔고를 빠르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차입이 확정됐다’는 법적 판단을 모두 대신하지 못한다. 구두 약정, 조건부 리콜, 담보 부족, 해외 수탁망의 시간차처럼 계약 상태가 복잡할 수 있다. 입력 자료가 틀리면 자동검증도 틀린 결론을 낸다. 책임자가 예외처리를 승인하는 절차와 감사기록이 필요하다.
결제제도도 함께 봐야 한다. 한국 주식의 결제주기는 거래일보다 뒤에 온다. 이 시간차 때문에 매도 시점에는 주식이 계좌에 없어도 결제일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오해가 생길 수 있다. 공매도 규제는 결제일 확보만이 아니라 주문 전에 차입조치를 요구한다. 결제 실패가 없었다는 사실과 주문 당시 적법했다는 판단은 별개다.
중개 증권사의 역할도 중요하다. 해외 고객이 차입 확인을 했다고 표시해 주문을 보내면 국내 중개사가 모든 기초계약을 실시간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반복되는 결제 직전 차입, 비정상적인 대량 주문, 잔고 오류 통지는 고객 확인을 강화할 신호다. 고객 진술에 의존할 수 있는 범위와 독립 검증이 필요한 기준을 계약과 시스템에 정해야 한다.
규제를 국가별로 다르게 해석하는 문제도 남는다. 글로벌 IB는 여러 시장을 하나의 시스템에서 처리하지만 각국의 차입 확정 요건과 위반 성립 시점은 다를 수 있다. 가장 느슨한 기준을 공통값으로 쓰면 엄격한 시장에서 위반이 생긴다. 시장별 규칙을 주문 단계에서 자동 적용하고 현지 법률 변경을 시스템에 반영한 날짜를 기록해야 한다.
행정제재와 형사책임 사이에 민사책임도 있다. 위반 주문으로 가격이 움직였다고 주장하는 투자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위법행위, 손해,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한다. 시장 전체 가격은 수많은 정보에 반응하므로 특정 주문과 개인 손실을 연결하기 어렵다. 과징금이 부과됐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거래손실이 배상되는 것은 아니다.
이 간격 때문에 과징금의 설계가 중요하다. 개별 투자자가 회복하기 어려운 시장질서 침해를 공적으로 제재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위반 규모와 이익, 반복성, 내부통제 시정 여부를 반영하되 회사 규모에 비해 너무 작아 영업비용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형사재판에서 고의가 증명되지 않아도 조직이 장부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책임은 행정규율로 남을 수 있다.
공매도 전면 금지는 즉각적인 신뢰 회복 수단으로 선택될 수 있지만 비용도 있다. 정상적인 헤지와 시장조성, 가격차 거래가 줄고 외국인 투자자의 거래전략이 바뀔 수 있다. 금지 기간에는 위반 탐지체계와 대차조건을 손보고 재개 기준을 미리 알려야 한다. 종료일이 계속 바뀌면 시장 참가자는 규칙보다 정책 신호를 거래하게 된다.
재개 뒤 평가는 찬반 여론만으로 하기 어렵다. 결제불이행, 무차입 의심 주문, 대차 수수료, 종목별 변동성, 시장 유동성을 함께 봐야 한다. 불법 적발 건수가 늘었다면 위반이 늘어난 것인지 탐지력이 좋아진 것인지 나눠야 한다. 제도의 성과는 적발이 0건이라는 숫자보다 위반을 얼마나 빨리 찾고 손실 전이를 막았는지로 측정하는 편이 낫다.
개인투자자는 공매도 자체를 불공정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기관의 대차 접근성과 담보조건이 유리하고 주문 시스템도 빠르기 때문이다. 공매도는 과대평가된 가격을 조정하고 유동성을 제공할 수 있다. 동시에 결제할 주식 없이 대량 매도하면 가격발견이 아니라 규칙 위반이 된다. 기능의 유용성이 기본 절차의 위반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찬반 논쟁은 크다. 그러나 이 사건의 출발점은 작다. 팔기 전에 빌렸는가. 빌린 수량을 다른 주문이 이미 사용하지 않았는가. 그 확인을 기록으로 남겼는가. 거대한 기관의 여러 시스템을 통과한 주문도 이 세 질문을 건너뛸 수 없다.